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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참아 내는 사람이 나뿐이더냐

94번 highway를 타고 시카고로 내려가던 아침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 복잡한 러시아워에 5차선 도로에서였다. 차가 충돌한 후 에어백이 터지고 잠시 정적이 흐르고 흐릿한 차 속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간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살아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며칠 후 차는 폐차되었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물리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받았다. 꾸준히 받은 덕인지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다.     오늘은 치료를 받은 후 근처 공원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봄바람이 아직은 차지만 푸릇푸릇 올라오는 잔디, 느린 걸음으로 흐르는 시내, 막 잎사귀들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물오른 나무들이 싱그럽게 어깨를 감싸고 봄을 부르고 있다. 낮게 드리운 솜사탕 같은 구름이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끊이지 않게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정점을 찍어준다. 혹한 겨울을 지나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 당연하고도 신기한 풍경 속에 앉아 나도 신비로움 속으로 돌아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봄비가 내렸다. 메마른 나뭇가지마다 물기를 머금고 촉촉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창에 맺혀 있는 빗방울, 크기도 다르고 맺혀 있는 모양도 다르지만 하나 같이 하늘에서 빚어낸 물방울이다. 구름은 셀 수도 없는 수억 수만의 물방울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추운 날엔 눈으로 내리고 때론 온 대지를 하얀 세상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가랑비로 세상 모든 것들의 얼굴을 말끔히 씻어주기도 하고 때론 앞을 볼 수 없이 퍼부어대는 소낙비로 변하여 작은 시내를 굽이치는 강물로 불어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물방울이다.     나와 너의 걸음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의 걸음도 그렇다. 누군가의 길을 막기도 하고 막힌 길을 터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추측하고 예증으로 그 과정을 추론할 뿐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길을 걸을 뿐이다. 내 앞에 펼쳐진 오늘이라는 시간과 풍경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당연한 듯 인정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밖에. 어제를 접은 사람만이 오늘을 맞이할 수 있다. 신비롭고 기대로 가득 찬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차를 주차하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와서 나를 통과해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     잠든 자를 흔들어 깨우고 감은 눈을 뜨게 하고 정지된 걸음을 춤추게 한다 물방울 속에 하나씩 맺혀있는 풍경이여 방울져 맺힌 시간이여 그리운 이의 눈망울이여     소원을 빌고 하늘을 보았다 봄비가 살포시 내리고 있다 저 비가 들었을 소원은 사랑을 지키는 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 보면 보인다 가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날려 보내는 그리운 이의 가슴이여     그 안에 살고 있다 마음속에 사는 것이다 당신에게 온 것을 빼면 당신께 받은 걸 갈무리하면 세상은 텅 빈 것이 된다 버린 후 찾아드는 아픔 참아내는 사람이 나뿐이더냐     살다 보면 잠깐씩 길이 끊어질 때가 있다. 날아갈 때는 뒤 돌아보지 않는다는 새들의 길도 끊어질 때가 있다. 때로 기대를 저버린 두려움으로 끝이 없는 길을 힘들게 날았을까? 땅의 길도, 호수의 길도, 새들의 길도, 하늘의 길도 언젠가 끊어질 날이 있겠지. 눈을 뜨면 걸어야 하는 나의 길은 또한 어떨까?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때로 맥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던 날도 있었다. 그건 다만 밖으로부터 오는 어려움과 고통 때문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내 안에 여러 갈래 갈라진 길 때문일 것이다.     넓은 길을 버리고 굳이 좁은 길을 택해 걸어야 할 때도 있다. 평탄한 길 대신 가파른 경사길을 택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할 때도 있다. 모두가 힘겨운 걸음 때문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진리. 다만 겨울을 참아내는 자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그 살을 에이는 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부딪쳐본 사람만이 따뜻하고 싱그러운 봄볕에 앉을 수 있다는. 생명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이 늘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봄을 느끼며 들었던 생각은 봄의 구석구석에서 품어내는 생명의 에너지, 어느 하나에도 혹독한 겨울을 참아낸 후 가질 수 있었던 긴 호흡이었다는 사실. 유독 나에게만 닥쳐온 고통이 아니었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고통은 통과한 후에야만 가질 수 있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에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삶의 희열이라는 사실을….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혹한 겨울 빗방울 크기 이의 눈망울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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